[이사람] 미투 선구자 “마음의 상처, 시로 치유해요”

People / 김현 시인

홍승우 기자2018.05.05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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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기 이전인 2016년, 한 시인이 문단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했었다. 그 주인공은 2009년 등단한 김현 시인(38)이다. 동그란 눈, 순수한 미소, 신중하고 친절한 말투. 김현 시인의 첫인상은세상의 그늘을 전혀 모를 것처럼 순박하다. 하지만 인상과 달리 그의 작품은 고달프고 부조리한 현실을 치열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신있는 시인의 ‘문단 미투’

“현실을 떠나서는 글을 쓸 수가 없어요. 배가 고프고 방세를 내야하는데 어떻게 글을 쓸 수 있겠어요.”

김현 시인은 본인 스스로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인이라고 해서 이상(理想) 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현실에 부대끼며 살아가야 글에서도 생동감이 느껴진다”며 “가끔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도 있지만 소시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즐겁다”고 했다.

예술을 한답시고 고자세로 일관하는 여느 문학가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현실을 더욱 파고들고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한다.

특히 지난 2월 출간한 산문집 <질문있습니다>는 현실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짚는다. 책 속에 있는 동명의 글 ‘질문있습니다’는 2016년 문단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기 위해 김 시인이 문예지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기고한 글이다. 2년 후 미투운동이 활발해지며 이 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 시인은 “돌이켜보면 미투운동은 지금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권운동, 페미니즘운동 등 과거부터 꾸준히 진행됐던 것”이라면서도 “‘질문있습니다’라는 글을 발표할 때 생각보다 파장이 커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질문있습니다’를 쓸 당시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지위상 우위를 이용해 성희롱을 일삼는 문단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공감대가 형성됐었다”며 “같이 고민했던 작가들은 문단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글들을 많이 썼다”고 전했다.

그는 “미투운동이 진행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겨나고 있지만 ‘무조건 피하고 보자’라는 반응은 좀 아쉽다”며 “문제에 대한 회피보다는 소통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하려는 쪽으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시인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시각으로 세계를 풀어낸 작품도 매력적이다. 그의 첫 시집 <글로리홀>은 퀴어·SF·포르노그래피 등 비주류적인 소재를 활용해 작가 본인이 소수자로 경험한 일을 그려냈다.

그는 “비주류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진 않았다”며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적은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만약 독자들에게 비주류처럼 느껴졌다면 바로 그러한 지점, 어떤 것이 주류이고 어떤 것이 비주류인가에 관해 질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번째 시집 <입술을 열면>의 경우 현실의 범위가 확대되고 비판적인 시각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는 “<글로리홀>은 저 위주로 쓴 시들을 묶은 시집”이라며 “<입술을 열면>은 저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에 더 관심을 갖고 쓴 시집”이라고 말했다.

◆ 평범한 ‘출퇴근러’의 공감힐링 ‘시요일’

사회의 부조리를 그려내며 치열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김 시인도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버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온·오프라인 강좌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고 있다”며 “글을 쓰는 데도 글 외에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데도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범한 ‘출퇴근러’로서 그가 꼽은 가장 큰 고충은 노동의 피로로 인해 글을 쓸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김 시인은 독자들의 사연을 받아 그 사연에 맞는 시를 한편 골라주고 짧은 처방전(시/산문)을 써주는 ‘시요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다. 매번 150~200명의 독자가 사연을 보내온다”며 “연령층도 다양하고 연애·진로·취업·교우관계 등 사연의 내용도 다채롭다”고 했다. 이어 김 시인은 “아이돌그룹 워너원 멤버인 강다니엘도 ‘시요일’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지난달 평소보다 많은 사용자가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아무래도 ‘강다니엘 효과’가 아닌가 싶다”고 귀띔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100편이 넘는 사연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사연이기 때문에 모든 고민이 다 기억에 남는다”며 “그래도 처음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 때문인지 가장 처음 시 처방전을 쓰게 된 사연을 고르고 싶다”고 말했다.

김 시인이 고른 사연은 좋아하던 가수가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팬이 자신의 심정을 적은 글이었다. 김 시인은 “사연을 적은 독자에게 박소란 시인의 <푸른 밤>이라는 시를 추천해줬다”며 “사랑하던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란 얼마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김 시인은 “‘시요일’에서 활동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에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는 “‘시요일’에 올라간 독자의 사연은 다른 독자들이 더욱 공감할 때가 많고 실제로 몇몇 독자들은 ‘상처가 치유됐다’거나 ‘사연을 읽고 추천시를 보니 공감된다’는 반응을 전해오기도 했다”며 “아무래도 기존에 시를 쓰거나 시집을 엮을 때는 독자들의 반응을 알기 어렵고 자기만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을 들으니 더욱 보람있다”고 했다.

김 시인이 활동하는 ‘시요일’은 출판 전문업체 창비에서 제작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이며 5월달에는 김 시인이 처방해주는 사연과 추천 시를 만나볼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8호(2018년 5월2일~5월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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