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능은 절대 스스로를 실망시키지 않아요”

기능한국인 1호 동구기업 류병현 대표

이학명 기자2016.01.0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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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는 지난 2006년 8월부터 매달 기술과 실력만으로 성공한 사람 1명을 선정해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해왔다. 기능한국인은 10년 이상 산업체 근무경력자 중 숙련기술인 중에서 선발하는 것으로 1호는 지난 2006년 8월 탄생했다. 그리고 2015년 12월까지 106호 기능한국인까지 나왔다. 기능한국인 1호 주인공은 동구기업 대표 류병현씨다.

류 대표는 진주기계공고를 나와 LG전자(구 금성사)에 근무(1975년 1월~1993년 5월)하던 1976년에 전국기능경기대회 목형직종에 출전해 1위를 차지했다. 그 후 목형기능인으로 자질을 인정받아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장을 비롯, 국제기능올림픽 원형직종 심사위원으로 활약했고,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출전 지도교사를 맡아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동구기업은 현재 해외법인을 거느리고, 단순 금형제조에서 부품 양산체제가 가능한 연매출 200억원대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류 대표는 향후 기술을 갈고 닦는 기능인 후배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12월9일 열린 ‘2015년도 기능한국인의 밤’에서 류 대표를 만났다.

Q. 우선 대표님의 청소년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배고팠던 시절이 많았어요.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고 농사일을 하는 홀어머니에 2남4녀 중 막내였거든요. 그래서 고향 합천의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고(진주기계공고)진학을 택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교사가 꿈이었는데,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을 빨리 배워야겠다’ 생각했거든요. 목형을 선택 한 것은 어릴적부터 나무 만지는 것도 좋아했고 손재주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였어요. 학교에서 재미있게 열심히 하니까 도내 공업계고 실기대회서 금·은메달을 따고 성과도 나타났어요. 3학년 때부터 부산에 있던 금성사(현 LG전자)에 취업했는데, 이 때 전국대회 출전도 병행해서 힘들었죠. 잠 잘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래도, 1976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목형부문 금메달로 보상을 받아 기뻤어요.

Q.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경기 당일 과제가 바꿨다고 하던데요?
1977년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제23회 국제기능경기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어요. 한국의 성적도 좋았고 주변에서 저도 당연히 입상하겠거니 생각했어요. 그런데, 경기 당일 갑자기 과제가 바뀌었어요. 과제와 다른 제품을 만들어 제출하긴 했지만, 입상은 이미 멀어진 것이었죠. 한국은 이 대회에 모두 26명이 출전해 24명이 입상해 종합우승을 차지했지만 저는 쓸쓸하게 메달 없이 귀국했죠. 국제대회 종합우승은 나라 전체의 경사였고 나도 그 주인공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좌절되니 방황의 시간이 길었어요.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각종 위로금과 취업, 병역혜택과 아파트 우선 입주권 등도 사라졌구요.

Q. 자신을 일으켜 세운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나요?
국제기능올림픽경기의 좌절은 어린나이라 충격이 커서 약 2년 동안 방황했어요.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앞에 가로막힌 벽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못다 이룬 꿈을 후배들을 통해 이뤄보자는 결심을 했는데, 다행히 다녔던 회사는 목형을 공식 훈련종목으로 선정해 인재를 육성하고 있었고, 이들을 지도하는 강사로 변신했어요. 제 반지하방까지 실습장을 만들어 합숙훈련을 시켰고 후배들이 금·은메달을 따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얻은 자신감이 1993년도 전국기능경기대회 목형 심사장, 1995년 최연소 국제대회 심사위원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주변을 둘러보니 당시 입상한 친구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조금 늦었지만, 꾸준하게 정진한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죠.

Q.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회사의 성과는?
후배 기능인들을 양성하는 일도 보람되는 일이지만 더 큰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리고 1993년 동기들과 중고 기계 몇 대로 회사를 꾸렸어요. 1993년 부품 가공업체로 출발했는데, 1995년 프레스금형으로 업종을 변경한 후 2000년 ISO9001 인증을 받았고 2001년 기업 부설연구소인 금형기술연구소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기술경영에 돌입했어요. 2001년 중국법인을 설립하며 수출도 본격화하며 2003년 100만달러 수출의 탑, 2004년 300만달러 수출의 탑을 받았어요. 지금은 단순 금형제조에서 부품 양산체제가 가능한 연매출 200억원대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Q. 대표님은 기술을 배워 성공한 케이스인데, 사실 꾸준히 그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려워하는 학생들도 많죠?
사실, 학생 스스로보다 사회적 분위기나 학부모들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걸 못하는 경우가 많죠. 전부 대학을 가야 된다고 말하니까. 공부 대신 기술을 배우는데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의 결정을 믿어주고 기업도 책임감을 갖고 가르치면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 생각도 바뀌어야 해요. 산업사회에 있어 기능은 필수거든요. 기능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많고 이로 인해 우수한 인적자원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죠. 기능은 절대 스스로를 실망시키지 않아요. 앞으로 기능인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도 ‘기능인 출신의 CEO’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러워하며 여기까지 왔잖아요.

Q. 대표님 같은 경우 성공한 케이스지만 많은 기능인들이 그냥 기능인으로 머물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시 원점이죠. 사장보다 직원으로 머무는 사람들이 더 많긴 하지만, 전문가 혹은 사장이 되려고 노력하잖아요. 모든 사회의 흐름이 잘 하는 사람은 성공하고 대우 받는 것은 똑 같지 않습니까. 문제는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친구들에게 좀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것은 정부, 지방자체단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이 생활환경을 비슷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면 국내 기술력도 높이고 한국의 위상도 올라가지 않겠어요?

Q. 한국형 도제교육을 동구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도제학교를 하며 느낀점은 무엇인가요?
도제학교는 사실 예전에 공고 시대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바뀌었죠. 지금 도제는 기업과 이미 매칭이 되어서 그 기업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죠. 이런 도제학교는 학교나 학생뿐만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간 여유를 가지고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하고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충성심 있는 인력을 확보할 수 있죠.

Q. 도제교육이 예전의 현장실습과는 조금 다른가요? 애로사항은?
예전엔 실습의 개념이 강했다면 지금은 교육의 개념이 강하죠. 기존에는 공업계 고등학생들이 실습 2~3개월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오면, 일을 새로 가르치는 시간도 필요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치기도 어려웠는데 도제학교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면 어떤 분야에 적성이 있는지도 멘토들이 확인할 수 있고, 회사가 그런 쪽으로 배치해 역량을 키워주면 능률도 올라가죠. 그런데 중소기업 CEO들이 참여 학생에 게 체계적인 교육을 하겠다는 마인드가 필요해요. 저는 도제학교에 관한 정부 지원금을 학생 교육 이외의 용도로 전혀 사용하지 않아요. 힘든 점은 학부모 인식이 아직 안되어서 그것을 바꾸는 것이죠.

Q.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졸업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하는 기술이 필요한 사회입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발달하면서 기술은 평준화 되는 경향이 있어요. 기술 외에도 자기만의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글로벌 시대를 앞 서 가려면 영어든 일어든 어학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항상 1등을 하기는 힘들어요. 살다보면 항상 기복이 있고 패자는 누구나 될 수 있어요. 1등인 사람도 패자였을 때가 있어요. 그것을 기억해야 해요.

☞ 본 기사는 <하이하이>(http://hi.moneyweek.co.kr) 제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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